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어디부터 잘못 되고 어디부터 엉켜버린 걸까.
수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아들, 딸과의 인연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고,
국가는 많은 부모들의 신뢰를 잃고 분노를 짊어져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다다라 있다.
안타까운 건..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그 시각의 온도차가 다르다는 점이다..
(사고를 선거유세에 이용하는 정치인들,
종북몰이에 나선 정치/언론계 인사들, 국민을 미개하다는 기득권 자제분
등등 “미개”한 기득권층 분들은 논외로 치자. 얘기가 너무 길어지니..)
예를 들자면.. 입에 담기 꺼려지지만, “일베”라는 공간.
유가족을 희롱하고, 분노를 일으킬 힘 조차 잃어가는 학부모들을 조롱하며,
타인의 아픔을 전혀 공유하지 못하는, 이미 자체적인 정화력을 잃어버린 듯한,
이 집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대부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듯 하다).
이들 대부분은 기득권층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일반 학생들이며,
심지어는 내 몇몇 지인들도 일베유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는 “개인적 일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결론의 기반에는 “가족의 해체”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작은 범위의 가족의 해체뿐만이 아니라 사회공동체로서의 가족의 해체를 의미한다.
우리 모두가 사회의 일원이라는 연대감,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적인
시민이라는 자주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성숙하기도 전에 위태해져버린
주체적인 시민사회의 해체를 의미한다.
사회적인 연대감이 없으니, 타인을 나의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사용
(혹은 악용) 한다 한들, 거부감이나 자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또한 스스로의 자주감이 미약하니, 다른 이의 존재가치를 인정할 기반조차 존재하질 않는다.
스스로의 존엄한 가치를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타인의 존재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다라는 건,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여기에 인터넷의 힘이 더해져, 불특정 다수들이 서로 모여, 타인을 모욕하는 것으로
미약한 서로의 존재감을 확대/과시하려 하는 곳이 지금의 일베사이트로
성장했을 거란 추정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공동체의 파괴는 언제부터 일어난 것일까.
이 역시 답은 명확하다. 해방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결과와 실적에
치중한 중앙집권적인 통치/개발/성장 정책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보면 거의 정확할 것이다.
물론, 모든 중앙집권적 방식이 필연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의 방향이
재벌 대기업을 향한 특혜와 언론장악으로 향했다는 것이 문제이며,
그 결과로 나타난, 정재계와 언론의 끈끈한 부정/부패의 고리,
그로 인해 탄생한 기득권에 지배당하는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 재벌과 기득권층은 독재의 물살을 타고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그들의 세력을 키웠다.
“재벌”이라는 단어가 외국에서도 사용하는 단어가 되버릴 정도로,
대한민국은 이미 소수의 기득권층을 위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일베라는 현상은 이런 기득권층의 지속된 중앙집권식 개발과
공동체 해체작업의 결과로 나타난 수 많은 부작용 중의 하나일 뿐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땅파고 건물세워서 개발하자는 정치인들이과
부자와 대기업에 감세와 특혜를 부여하는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더러운 대한민국의 단상이란 얘기다.
이렇게 형성된 기득권층은 시민으로부터의 모든 비판과 감시를 거부한다.
그렇기에, 보다 팍팍한 삶으로 일반 시민들을 몰아넣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극렬한 경쟁 속에 던져져, 경쟁에서 탈락하면 사회적 패자로 남아야 하며
동시에 국가로부터의 충분한 지원(즉, 복지)를 바랄 수도 없는 사회.
대기업 혹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으로 여겨지는 획일화되고 경직된 사회.
이런 나라에서 일반 시민들의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건전한 사회공동체가
형성되기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 것 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산업화”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며,
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부작용으로 받아들인다. 개가 웃을 소리.
우리나라의 극심한 빈부격차 역시 이에서 발생한 결과이다.
간혹, 지인들을 만나면, 우리나라 이상하다, 빈부격차 개선되야 한다,
사회불평등 해소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치혐오증으로 인해 정치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치혐오증이란 꽤나 크게 사고를 지배하니까.
그러나, 그런 모든 현상의 원인이 정치에 있고, 현실적인 해결법 역시 정치라는 걸 알지 못한다면,
그 주장은 그저 껍데기 뿐인 허울 좋은 주장,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본인이 민중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깜냥이 안된다면 더더욱).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중, 정치가 좋아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것은 너무나 확실하니까.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단 한번이라도, 기득권집단이
일반 시민/국민들의 권익만을 위해 스스로 제 살을 깎는 경우를 본적이 있는가.
시민들의 감시와 비판, 때로는 비난이 있지 않는 이상, 그러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대한민국 99%의 국민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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